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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을 향해가는 시간들

김노암(문화역서울284 운영위원), 2017

이경훈 개인전
좋은 시절을 향해가는 시간들

김노암(문화역서울284 운영위원)
 
작품들 또는 어떤 분위기

이글은 이경훈 작가의 2017년 작품들에 관한 글이다. 그의 2017년 작품들은 몇 가지 형식적 특징과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대체로 정지된 장면이 변주된다. 행위를 하는 중에도 그것을 사진으로 한 컷 찍은 듯 특정 시점에 멈춰 있다. 중앙에 인물이 있고 인물은 무언가 행위를 하거나 어떤 감정 상태에 몰입해있다. 그림의 전체 분위기는 기분 좋은 시절의 꿈을 찬찬히 회고하며 기록하듯 구체화한다. 날씨는 화창하다. 봄이나 초여름의 볕이 잘 들고 산들산들 바람이 분다.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후각과 촉각에 오래전 기록해 놓았던 그러나 오랫동안 망각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현재의 감각으로 소환한다. 즐겁고 유쾌한 상태이다.

인물을 둘러싸고 고양이와 오리 등 동물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인물의 표정과 감정 상태는 거의 대부분 매우 평온하거나 행복한 상태이다. 감정적으로 밝은 상황이며 전체 칼라와 톤은 부드러운 파스텔조이며 붓 터치나 드로잉의 상태는 임의적이며 무작위적인 상태로 신경이나 근육이 이완되어 편안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형식의 특징들은 작품의 내용 즉 인물의 표정이나 태도나 제스처, 동물과의 관계나 현재하고 있는 행위의 방향과 대상 등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보통 시민들의 일상을 재현하고 있다. 작품의 형태와 색조를 통해 작업의 아이디어 떠올리고 제작하는 과정에 작가가 어떤 생각과 상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Ballet Deer(2017)’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우화적이다. 사람이 춤추는 사슴으로 희화되어 있다. 춤추는 환경은 자유롭고 날씨는 완벽하다. 꽃으로 만든 벽을 발레복을 입은 사슴 또는 사슴의 탈을 쓴 소녀가 힘껏 뛰어넘고 있다. 과장되게 일자로 쭉 뻗은 다리와 속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짧은 가로선들이 점점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상쾌한 날씨에 작은 구름들이 떠있고 꽃들 사이로 작가 특유의 엄지를 치켜세운 손이 등장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엄지를 든 손은 이모티콘 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Rocking Deer(2017)’에서는 사슴의 형태를 한 흔들 목마가 등장한다. 소녀가 손을 크게 벌리고 즐겁게 타고 있다. 다른 작품 ‘Sun ward(2017)’는 소녀가 킥 보드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약간 놀란 표정과 큰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균형을 잡으려는 모습이다. 소녀의 손과 발은 건강하게 약간 통통하게 크게 그려져 있다. 머리의 크기도 몸에 비해 크게 그려져 인물의 나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는 어린 시절 작가의 친구였거나 혹은 작가의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들 중 시간 상 가장 앞서는 것은 ‘Rocking Deer(2017)’일 것이다.

아마도 어린 소녀는 발레를 배울 때 어린 시절 타던 사슴머리의 목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나 신화학자들에 따르면 과거 인간에게 있어서 동물은 신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덜 성숙한 정신에서는 신과 영웅과 동물이 한데 뒤섞여 혼합된다. 이 시기의 정신은 사람이 슈퍼히어로가 되고 어느 순간 동물이 되고 또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Rainy Day(2017)’에서는 비 오는 날 종이학을 들고 당황하는 소년을 그리고 있다. 종이학은 실제보다 매우 크게 그려져 마치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과장되어 있다. 고양이와 오리들이 등장하고 하트와 엄지를 치켜세우는 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들 작품들은 작가의 오래전 어린 시절의 강렬했던 인상을 형상하고 있다. 흔히 어린 시절 비 에 젓는 경험은 원형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망각의 사건과 분위기가 훅 솟는다. 일종의 정신의 타임루프가 일어나기도 한다.

작품 ‘Music Class1, 2(2017)’, ‘Champion(2017)’, ‘Dunk Shoot(2017)’ 등은 청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한 시기의 낙천성이 느껴진다. 몸은 하루하루 충만한 감각을 느낀다. ‘Music Class1, 2(2017)’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살짝 과장되고 왜곡된 인체의 비율에 얼굴 표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악기 연주를 위해 애쓰고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음악은 신체의 운동과 감각기관의 직접적 접촉을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아주 오래 기억되어 무의식적 층위까지 내려간다. ‘Big Fish(2017)’은 자기 몸보다 더 큰 물고기를 안고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남자는 낚시 줄에 미끼를 매달아 물고기 입에 갖다 대고 있다. 남자 주변에는 고양이와 오리와 게가 보조를 맞추듯 등장한다. 물고기는 길이가 짧고 몸이 뭉뚝한 형태로 마치 붕어빵을 크게 확대해 논 모습이다. ‘Together(2017)’는 핑크 플라맹고를 마치 튜브 형태로 두른 채 남녀가 당나귀와 고양이와 함께 주위의 오리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보인다. 바람개비도 있는 것을 보면 청소년시기의 풋풋한 첫 미팅이나 막 사귀기 시작한 남녀의 모습처럼 보인다. 고양이와 장난감 농구공과 농구대를 가지고 함께 놀고 있는 ‘Dunk Shoot(2017)’나 권투를 하는 남자가 고양이와 즐겁게 눈을 맞추며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을 그린 ‘Champion(2017)’ 등 모두 청년기의 작가의 마음의 상태를 은유한다. 오늘 감각은 섬세하고 동시에 미래의 낙관으로 충만하다.

작품은 ‘White Cat(2017)’과 ‘Spacial Gift(2017)’는 보다 성숙한 정신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과 젊은 남자가 등장하는 그림과 달리 ‘White Cat(2017)’은 얼굴이 타원형에 길고 목도 몸도 실제보다 살짝 유선형으로 길게 그려진 여인이 고양이를 안고 있다. 인물은 눈은 흰자위 없이 검은 눈동자만 있어서 만화나 일러스트의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배경을 밝은 파스텔조의 채색으로 화면을 단순하게 구성하고 있다. 마치 가족처럼 여인과 고양이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불길한 검은 고양이가 아닌 밝은 흰 고양이는 고양이를 행복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인식 변화를 떠올릴 수 있다. ‘Spacial Gift(2017)’은 분홍색 과일을 안고 있는 여인이 눈을 감고 현재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 편안하게 감은 눈과 머리를 살짝 기울어 가슴에 안고 있는 물체에 기대고 있다. 마치 숨소리를 들으려는 듯 감정이 일치된 교감의 상태를 보여준다. 여자라기보다는 여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듯 매우 성숙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여인은 작가의 기억에 남아있는 모성을 떠올린다.

‘Holozip(2017)’의 여자는 매우 도전적이거나 야성적이 모습이다. 한 여자가 몸이 드러나는 짧고 붉은 옷을 입고 망사스타킹을 한 채 파란색 킥 보드를 타고 거리를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여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 킥 보드에 몰입하여 순수하게 즐길 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인연을 맺어온 또는 인연을 맺고자 했던 또는 그냥 스쳐지나갔지만 무의식적 차원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들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아마도 작가 자신의 여성성을 투사한 이성의 모습으로 등장한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

‘Close Friends(2017)’은 이례적으로 인물의 표정이 이질적이다. 자유로운 스케치 방식으로 그려졌지만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는 아니다. 거북이를 등에 인 채, 또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의 등을 거북이가 기어오르고 있고 남자의 표정은 뭔가 고민거리가 있는 듯 또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갑자기 고개를 돌린다. 눈과 입은 날카롭게 반복된 직선이 중첩되어 그려져 있다. 그 와중에 작품을 그리는 작가나 또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과 눈을 맞출 수 있다. ‘Close Friends(2017)’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성숙한 감각을 떠올린다. 가장 구체적이고 친밀하면서도 가장 신비하고 형이상학적 관계를 은유한다.

작가의 근작들은 이경훈 작가 자신의 현재를 가능하게 한 과거의 어떤 시점과 사건과 같은 일종의 잃어버린 고리와 같은 순간들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 위에서 자기해방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사람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가는데 베나민 버튼 오직 한 사람만이 시간을 반대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주위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늙어가지만 벤자민 버튼은 점점 젊어져간다. 모든 사건과 이야기는 시간을 다르게 산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작가 또한 자신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화가에게 이미지는 바로 거기에서 태어난다.

이경훈 작가의 작품에 대한 공감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구체적인 작품의 질료적 상태, 실제 작가의 작업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드로잉과 그 흔적들, 채색 과정의 변화들을 보면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표현과 형식의 차원과 의미와 내용의 차원이 분리되거나 중첩되는 심미적 운동을 볼 수 있다. 두 차원의 거리와 겹치는 정도와 수준에 따라서 작가의 작품은 열린 경로를 따라서 감상되고 해석된다. 삶의 수많은 길과 결정 가운데 우리는 매번 어느 한 순간에 사로잡힌다. 한 개인의 인생이 장미 빛 환상으로 재현된다. 작품 속 남자는 작가다.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에, 자신을 세심하게 되돌아보는 가운데 작가는 구원된다. 작가는 해방된 자아의 어떤 균형 상태에 도달한 듯하다.

밝은 햇살이 녹아드는 대기가 인물을 둘러싸고 있다. 너무 과장하지도 또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도 않은 채 일정한 수준의 평화로운 한 때가 그려진다.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지나온 시절의 잊고 있던 순간들을 찬찬히 회고해보며 즐겁게 재구성하고 있다. 어린 시절, 청년시절, 그리고 소년과 소년, 청년과 여인.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작가의 상상력은 역으로 과거의 무언가 답답하고 막막했던 일들이 해소되고 새로운 감각과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미래의 시간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한다. 의식이 과거로 소급 될수록 현재와 미래가 더 밝게 인식된다. 과거가 밝고 평화로웠다면 현재는 결코 불행할 수 없다. 현재의 순간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과거이니 말이다. 감정의 연쇄 속에 작가의 이미지는 단조로울 수 있다.

인물과 배경은 모두 산뜻한 감각의 색상과 터치, 표면을 긁어낸 스크래치 등으로 질감으로 표면처리를 한다. 조형미술의 전통적인 공간감이나 원근감은 가볍게 무시된다. 유쾌한 상태의 감정 속에서 인물의 모습, 동작, 태도, 상황은 과거 작가의 한 때의 상황을 재구성한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장년으로 점차 성장해가는 한 인간의 얇거나 깊은 관계의 경험들, 기쁨과 상처가 종국에는 화해를 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의 갈등과 고통, 정신적 장애가 해소된 상태의 이미지들은 작가 자신과 작가가 함께한 동세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과 같은 형이상학적 감각을 떠올릴 수 있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오직 각자의 내면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거나 함께 산다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또는 언어적 착각인 것이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고 느낌을 번역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인류의 공통의 시간이란 관념은 말 그대로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번역물들이다. 시간 그 자체는 아니다.

논리와 설명 이전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시간을 느낀다. 이 느낌은 언어화 할 수 없는, 언어의 밖에 존재하거나 또는 언어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과 존재를 분리해 생각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이 시간과 분리될 수 없으니 말이다. 내적인 감각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많은 이미지가 나타나고 사라진다. 어떤 이미지들은 나름의 형태를 갖추고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소중한 순간들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다시 실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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