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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훈의 Thumb-Up

    조성지 (미술비평, THE ART PLANT_YO Gallery 대표), 2017

    <이경훈의 Thumb-Up>
    그때는 그때가 좋았고, 지금이 지금이 좋다. 내일은 내일이 좋을 것이다.

     이경훈의 드로잉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 이야기들의 궤적을 그린다. 그렇게 작가 이경훈은 현대 대도시 속 익명의 ‘나’와 함께 해왔다.
     이경훈은 대도시의 삶이 좋다고 한다. 그는 초기작업에서부터, 2010년 개인전 당시 필자와의 글 작업을 함께하며 인터뷰 할 때도, 그리고 꽤 오랜 공백을 깨고 <Thumb-Up>이란 제목으로 이번 개인전을 열면서도, 한결같이 말한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불야성(不夜城)의 대도시 서울의 인상은 깨어있는 열정과 에너지로 그를 매료시킨 듯하다. 그렇다. 서울-문막-제주-고향 전주-그리고 다시 서울, 그는 자신의 방(房)에서 무한한 자유와 성공의 가능성, 욕망을 자극하는 서울의 삶을 현대 대도시를 대변하는 하나의 사태로 옮겨 놓는다. 그런가 하면, 그의 방(方)형 작업실과 캔버스는 번번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작가적 삶과 한계를 마주하게 한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작가 이경훈의 방(房)은 이러한 모순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그는 약 20년의 지난한 시간동안 참으로 무던히 그려내고 있다. 제한된 공간에 속박된 상황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그 한계지점에서 날마다의 성실한 드로잉으로 풀어낸다.
     그의 드로잉들은 작가의 의도여부와 별도로, 크게 세 차례 가량 구도와 표현기법, 서술방식의 변화를 보이는데, 이에 따른 작가적 시점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일종의 역할변신이 눈에 띈다. 여하한의 변화와 시도를 막론하고, 이경훈의 드로잉에는 고립되고 묻혀 사라져버린, 혹은 또 다른 방식의 사라짐인 물들어버린 시간과 그 시간을 살아내는 존재들, 익명의 ‘나’의 삶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초기작업
    * 도시와 밤의 예찬
     이경훈은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로, 그의 초기작업은 한지 위에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를 프린팅 하고, 그 위에 드로잉 하는 방식으로 출발한다. 이 시기 습작들을 보면, 서로 다른 층 위의 형상들이 중첩되며 우연히 떠오르는 제3의 형상들을 포착하는 드로잉 효과를 즐겨왔다. 그는 자유로운 선의 흐름을 따라서 밤에 관한 작가적 사색과 예술적 메시지를 넌지시 풍기기도 하고, 혹은 툭툭 발설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첫 개인전 <Fly From the Shadow> (한전프라자갤러리 기획초대) 이래 특유의 개성 공간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의 대형작품들은 이질적인 시공간의 층위들이 결합된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공간감이 과감히 파괴되어 있다. 따라서 시공간의 선후상하관계와 형상들 간의 경계를 격의 없이 유쾌하게 넘나들며 평면적이고 리드미컬한 장식성 강한 화면구성이 특징적 효과로 부각되었다. 이후 <Alcohol & Enjoy Life> (2008, JSArt Gallery), <Portrait of Night> (2008, GreemZip), <Color of Night> (2009, Gallery IS), <Magical Night>(2009, Gallery Wa) 등 개인전 타이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모든 다채로운 에너지를 품은 향연의 공간,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시간, 도시와 밤에 관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 현대도시인의 멜랑콜리
     이경훈에게 현대도시인의 시공간이 매력적인 만큼, 그의 드로잉은 현실의 공간을 강렬한 색채와 장식성 강한 화면, 다소 만화적 상상력이 넘치는 형상 실루엣들로 슬그머니 뒤바꿔놓는 무척 매력적인 개성을 드러낸다.
     그는 불야성의 거리와 카페, 바 등의 실내공간의 흥청거림, 왁자지껄, 웅성거림, 소동, 난장들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옮겨놓는다. '조명등과 불빛 아래 형상들'vs.'술병 안에 핀 꽃', '술잔 안에 (비친) 새와 인간, 비정형의 형상'vs.'새장에 갇힌 새와 인간' '색채의 리듬과 비정형'vs.'색과 패턴에 갇힌 형상' 등- 내부의 개별형상들이 역전된 형상과 대비의 관계들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화면은 보는 이에게 시각적 유희의 장을 펼쳐낸다. 보는 이로 하여금 형상들의 실루엣을 따라서 화면 앞을 서성이게 한다. 그런데 그의 드로잉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이끌며 기묘한 순간을 경험케 한다. 그의 화면은 어느 샌가 이러한 시각적 유희는 사라지고 예술적 질문과 사색을 던지는 멜랑콜리의 공간으로 역전된다.
     아! 말할 수 없는 기묘한 순간, 이 감정은 무엇일까? 그의 드로잉은 어둠에 대한 두려움마저 잊고 도시 밤거리의 자유를 만끽하려 서성이는 현대인의 현실사태를 잡아낸다. 도시와 밤의 삶을 예찬하는 익명의 공간, 한데 모인 그 한복판(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자유, 그 이면에 여실히 드러나는 개별존재의 감정, 존재와 사라짐, 덧없음 등 시간의 알레고리를 작동시킨다.
     
    * 잠들 시간, 꿈꿀 권리를 찾아서
      현대도시인의 멜랑콜리,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도 작가 이경훈이 예민하게 느끼는 현실의 문제적 감정인 듯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도시의 밤, 잠을 잊은 그대’라는 현대도시인의 별칭은 그 누구도 아닌 작가 이경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는 현대 대도시인으로서의 존재중명을 위한 편집증적 욕망을 드러낸다. 화면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형상관계들을 살려내며, 결과적으로 과도하게 표피적인 현란함과 소란스러움 가득한 전체장면들을 연출하였다. 무질서한 형상들을 수직·수평, 물결무늬의 구획으로 질서 지우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들은 오히려 작가 이경훈을 스스로 미궁의 상황에 고스란히 가둬버리고 만다.
     700호 크기의 「밤을 깨우는 닭, Wake-Up!」은 그가 처했던 바로 이러한 상황의 자화상이 아닐까? 색 진동의 무질서한 흥청거림과 그 속에서 경쟁적으로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여러 형상들, 그 가운데서 커다랗게 자리한 밤을 깨우는 닭은 그리드로 구획된 우리 안에 갇힌 형국이다. 밤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는 밤의 소음들 속에 공허하게 묻혀 그 존재마저 무의미하게 사라져가는 듯 하다.   
     결국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메시지는 그림의 덧없음과 멜랑콜리한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덧없음의 감정 자체만으로도 작가 이경훈의 ‘밤을 깨우는 닭’은 편안히 잠들 시간, 자유로이 꿈꿀 권리,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하는 시간에 대한 작가적 메시지를 상기시키는 경보음 역할을 한다. 도심의 인공불빛과는 다른, 본연으로의 회복 공간, 다채로운 색의 꿈들이 공존하는 원초적인 자연의 밤을 우리에게 넌지시 그리고 툭툭, 하지만 끈질기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가 이경훈에게 드로잉은 매순간 ‘그림’ 사각 방(方)형의 틀이라는 한계상황을 마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손을 움직이고 부단히 사유하며 돌파구를 모색하는 힘이다. 말하자면 작가 이경훈과 그의 작업개념을 뒷받침하고 추진하는 힘이다. 그런데 아! 어떡하면 좋을까.


    + 2010년 개인전 <이경훈의 드로잉 선들; Let's Make a Lace>
    * 런런런,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작가 이경훈은 2010년 개인전에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선(線)적 드로잉을 선보였다. 미궁 속에 촉각을 세우고 촌각을 다투듯 드로잉에 집중한다. 그는 온몸의 감각을 샤프펜의 얇은 필심에 집중하며, 화면 전체를 균질적으로 운행하는 드로잉을 시도했다. 장지 위의 오일이 마르기 전까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자유롭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이 시기의 드로잉 작업에 <Let's Make a Lace>라는 별칭을 붙인 바와 같이, 화면 형상들은 마치 레이스 문양처럼 보였다. 실제 작가 이경훈의 조형방식 역시, 한 가닥의 실로 코를 잡아 단을 세우고, 다시 고를 엮어 면 만들기를 이어가는 레이스 뜨기와 흡사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한 굵기와 힘의 긴장을 유지하며 화면 전체에 균질하게 배분한 힘의 흔적들이 바탕에 고스란히 밀착되어 형상과 배경 구분 없이 드로잉한 시간이라는 하나의 선이자 면이자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캔버스에서 캔버스로 이어지면서 서로 다른 시간들은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무한히 확장하는 자연과 닮은 이경훈의 시공간을 구성해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한한 확장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더해진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 한계상황을 첨가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는 사각 틀의 캔버스라는 제한조건뿐 아니라 물감이 마르기 전까지의 시간과 사프펜의 필심이라는 매체를 사용하며 제한조건을 더했다. 그리고 마치 한계상황들과 겨루듯 최대한 자신의 드로잉 행위에 몰입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러 가지 룰과 제한조건들을 초월하여 경기를 즐기는 선수처럼 그는 작업순간에 취한 감흥과 인상들을 따라 드로잉을 이어갔다. 결과물들을 예를 들어, ‘2010년 8월17일부터 15시간동안 진행된 드로잉의 경우 'P2181715'와 같은 일련번호로 명명하며, 예술가로서 살아있는 시간들을 한 캔버스에서 또 한 캔버스로 이어 나아갔다. 작가 이경훈은 마치 고대의 서기인(書記人)이 석고판에 철심으로 동일한 시간의 간격들을 크고 작은 역사의 영원한 순간으로 우직하게 기록하듯이, 자신의 시간을 기록한다.
     그런데 레이스 조직에서 하나의 형상은 둘러싸인 형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불확정적인 형상이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조직과 형상을 이어가기를 반복할지언정 특정 메시지를 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이경훈의 개별화면 속 개체형상들 역시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형상이다. 그리고 개별화면들 역시 감흥과 정서를 담고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는 완결된 이야기를 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형과 구성방식은 인간적인 의미체계 안에 갇혀있던 형상과 배경, 주인공과 주변인이라는 위계적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다원적이고 열린 관계 속에서 형상들이 수평적으로 무한히 펼쳐 나아가게 한다. 이는 초기작업에서 작가 이경훈이 현대대도시의 밤풍경에서 맞닥뜨린 미로와 한계 상황을 뚫고 극복하려는 열정과 의지를 보여준다는 데에 작업의미를 살펴보게 한다.

    * 무목적(無目的)의 해방감과 난처함으로부터
     2007년 개인전에서 이경훈의 드로잉 선들, 일명 ‘Let's Make a Lace’라고 부른 새로운 시도는 특정메시지를 의도하거나 그 목적성의 끝은 알 수 없으나 그 자체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반면, 다소 경직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초기작업에서 오히려 문제의식과 주제를 ‘넌지시’라도 표명하고, 동양화 종이와 안료를 사용하여 강렬한 색채, 시원한 스케일감과 경쾌한 리듬을 선사했던 것에 비해서 말이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경직된 인상의 인물 형상들은 여러 관계 속에서 옴짝 달싹 못하고 끼어있는 현대 도시인의 모습, 그리고 현대 대도시의 삶을 애정하는 작가의 위치와 처지의 난처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 이경훈은 무수히 많은 관계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록도구처럼 자신을 위치시키고, 기계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듯 자신의 몸을 도구화한다. 그는 초기의 작업과 달리 관계적 만남들이 전하는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차원의 인상을 배제시키고, 제3의 새로운 형상 세계를 차분히 풀어내는 드로잉을 시도한다. 유연하게 곡선을 그리고, 곡선의 한쪽을 노끈이나 빗살, 격자 등 패턴무늬로 한가득 채워 넣으면 마치 원래 하나였던 듯 테두리와 패턴이 결속된 문양의 면을 드러낸다. 그때마다의 느낌을 담은 다양한 리듬감의 문양으로 채워 넣으면서 형상을 구성하고 바탕과 하나로 결속하기를 반복한다. 그는 관계들 사이를 자유롭게 노닐며, 새로운 관계들을 시작하도록 개체와 개체 간의 경계를 열어주고, 연결시켜가며, 다시 더 큰 하나로 이끄는 행위자이다. 그리고 ‘자연의 밤'의 메시지와 '드로잉'의 의미를 유사한 무언가로 연결 지으며 새로운 질서를 시도한다.
     말하자면, 작가 이경훈이 '드로잉'이라는 용어의 작동적이고 작용적인 의미를 살려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시작과 끝, 완성과 미완성, 형상의 경계와 의미 등은 그의 관심도 그의 몫도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자신의 화면에 대한 정의와 판단을 스스로 유보한 채, 앞서 말했듯이 단지 장지에 오일물감을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까지 샤프와 목탄으로 수직으로 세워진 화면을 마주하며 드로잉하는 몰입과 긴장감을 즐길 뿐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한계에 맞서 겨루는 매순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내는 진지한 과정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그의 드로잉이 지닌 무목적성과 무심함이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는 모든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 다채로운 에너지를 품은 공간인 원초적인 자연의 밤, 바로 그 밤의 심연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세계의 여러 상이한 규칙과 질서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 차이로부터 다양한 가능성들을 살려내는 자유와 공존의 새로운 조화를 이끌어낼 예술적 시도라는 확신 때문이다.


    + 2017년 개인전 <Thumb-Up>
    * 충만한 기쁨, 되찾은 ‘나’와의 화해
     2017년 개인전에서 이경훈은 다양한 표정의 ‘눈’들을 표현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것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에 작가 이경훈의 시선이 닿아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밤잠을 잊은 채 고뇌하며 사색하는 눈, 한 시라도 놓칠 새라 필사하듯 기록하는 눈도 아니다. 그동안 그는 드로잉으로 현대 대도시,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참 많은 ‘나’와 ‘우리’의 이야기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때로는 왁자지껄 우글우글 흥청거리는 어둠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그 어둠을 서성이며, 또 때로는 소소한 일상의 재잘재잘, 종알종알 대는, 심지어는 알 수 없는 한바탕 소란과 소음들 속에 말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 비로소 자신의 소리로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친구’ 이경훈의 이야기를 시작한 듯하다.
     돌이켜 보니, 그는 퍽 수다스러운 것 같았지만 한창 작업중인 상태의 흥분과 설렘으로 상기된 기분을 숨을 몰아가며 쏟아냈을 뿐 자기 이야기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던 듯하다. 물론, 이는 예술이란 것이 지니는 미묘성과 다의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는 부단한 드로잉행위로 외부의 무수히 많은 시선들과의 투쟁의 시간들, 자기 회의와 부정으로 애매모호한 시간들의 촌각들을 돌고 돌면서도, 꽤 오랜 시간을 견디어 낸 듯하다. 그렇게 그는 부지런히 돌고 돌아서,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발견한 듯하다. 그리고 화면 깊이 침잠하기도 하고, 화면 전체를 바삐 오가던 지난한 시간을 뒤로 하고, 마침내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서 화면 위로 건져 올릴 시간들, 그 시간의 주인공을 발견한 듯하다. 아! 이건가?! 작가 이경훈은 이제야 자신의 마음가득 차고 넘치는 자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숨도 쉬어가면서 말이다. 그는 ‘나, 살았다!’ ‘나, 살아있어!’ 고개를 들이 내밀고 올라오는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하나씩 화면 위로 건져 옮겨, 그 시간과 그 시간의 주인공들에게 일명 ‘엄지척’을 달아준다.
     꽤 오랜 만의 개인전이다. 어쩌면 꽤 오랜 시간 끝에 개인전이란 생각도 든다. 이경훈의 <Thumb-Up>은 우리를 자신과의 화해와 긍정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눈 감으면 느껴지는 것들,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여전히 나와 함께 숨 쉬는 것들에 스스로 ‘엄지척’을 달아주는 나, 그 충만한 기쁨으로부터 나를 되찾는 시간을 선사한다.

     개인전을 통해서만 만날 뿐이지만, 작가 이경훈은 매번 그리고 여전히 자신은 대도시, 서울의 삶이 좋다고, 작업하는 삶이 좋다고 말한다. 문득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거미는 거미줄을 치고, 나는 나를 긍정한다.’ 그렇다. 그때는 그때의 삶이 좋고, 지금은 지금의 삶이 좋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 삶이 좋을 것이다.
                                       
                                                                         
    2010년 개인전 서문 ‘이경훈의 드로잉 선들_Let's Make a Lace’을 윤문하고 덧붙임

                                                                                                 
    2017년 8월 이경훈 개인전 <Thumb-Up> 즈음하여
    조성지 (미술비평, THE ART PLANT_YO Gallery 대표)